요즘 들어 내 작업 지연의 문제가 ADHD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을 품은 후...
증상과 특징들을 확인해보며, 오래전부터 ADHD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꼿혔다.
어릴 때 발견되지 못하고, 뒤늦게 발견되는 성인ADHD의 경우
과격하다거나, 산만함이 드러나지 않는 조용한 ADHD가 많다.
나는 되레 차분한 편이었는데... 주변 지인들의 10배이상 쯤 되는 왕성한 호기심과 덤벙거림이 사실은 ADHD였나? 궁금했다.
인터넷에서 ADHD 자가보고 척도 증상 체크리스트를 아주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문항은 1-6번까지의 A파트가 유의미하고 B파트는 참고 수준이다.
사실상 나는 A파트 보다 B파트의 특징들에 더 중점된 것 같았고
이 정도의 문항만으로 ADHD를 진단하기는 섣부른 것 같아 정신과 병원에 방문했다.
병원 여직원이 사전 설문조사를 한 후 의사를 만나게 됐는데 젊고 하이텐션의 남자였다.
면담은 약 5분 정도,
놀랍게도... 병원에서 ADHD 진단을 위해 사용한 질문지가
내가 이미 인터넷을 통해 쉽게 구했던 상단의 저 종이 한장 뿐이었다.
머리에 전류를 연결해서 뇌파를 기록한다던가 하는 것을 기대했는데..
팔과 다리에 집게 같은 것을 연결해서 약 5분 정도 나의 흥분 상태를 체크하는 것 정도 외에는 기계적 측정을 하지 않았다.
그 기계 검사를 통해서 의사는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내 흥분도가 평균에 비해 낮은 편이고, 우울증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봤는데...
이게 너무나 기계적인 해석처럼 느껴졌다.
의사는 해석이 앞서 나의 컨디션을 물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나는 수면이 부족한 상태에서 병원을 방문했고, 평소 낮시간에는 활력이 별로 없고, 오후부터 집중도가 올라가는 타입이었다. 그런 환자가 아침 9시부터 병원에서 검사를 하는데, 의사는 전날 나의 수면시간을 체크하지도, 평소 야행성인지, 주행성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저 간단한 18개의 문항과 기계 검사만으로 콘서타를 처방해주기로 했다.
때문에 나는 의사의 진단을 마냥 신뢰할 수는 없었다.
정신과 상담을 해본 게 처음이라서 내심 기대를 했는데...
ADHD라는 게 기계적 장치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유의미한 데이터는 없는 모양이다.
그냥 의사의 경험과 의학적 지식을 보태서 환자가 원하는 약을 주는 모양이다.
일단 약을 먹어보고, 환자에게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으면 서서히 증량을 하고, 증상이 호전되면 그것이 맞는 처방이라는 결론이 나는, 치료는 이렇게 귀납적인 모양이다.
만약 내가 ADHD에 대한 의심을 품지 않고 방문했다면 우울증 처방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요즘 청년의 85%가 우울증을 겪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인구의 85%가 우울증이라면, 그건 고쳐야 할 병이라기보다는 그 인류의 특질로 알고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닐까?
어쩌면 병원에서는 이렇게 쉽게 우울증을 진단하기 때문에 손쉽게 우울증 환자가 되나보다.
우울증약이라는 게 도파민의 분비를 자극하기 때문에 되레 부작용을 일으키기 쉬울텐데...
우울증 약을 먹다가 갑자기 끊으면 자살 충동이 극심하고, 많은 연예인들의 자살에 우울증약의 영향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병원을 찾다보면, 환자가 똑똑해야 자기 병을 제대로 알고, 정확하게 고친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의사는 콘서타 18mg, 1주일치를 먼저 처방해줬다. (최종적으로 36mg을 복용해야 한다고 했다.)
약은 병원에서 직접 제공했다.
첫 방문에 병원비는 4만원이 좀 넘었다.
ADHD 약은 총 3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내게 콘서타를 먹겠냐고 물었다.
인터넷에 후기 대부분이 콘서타를 복용했다는 것을 봤기 때문에 그게 안전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콘서타는 작은 알약 한 개로 되어 있어서 먹기 간편했다.
아침마다 먹으라고 했다.
약효는 약 9-12시간 지속되기 때문에 낮시간 동안의 각성에 효과적인 것 같았다.
약을 먹고 나서 변화는
그동안 미뤄놨던 일을 헤치워야겠다는 의지가 더 생기고,
위약효과일지는 모르겠지만 더 자신감이 생겼다.
근데 약간 입맛이 없고, 메스꺼운 기분 같은 게 들었는데...
코로나에 걸렸나 의심했는데...
콘서타 부작용 중에 메스꺼움, 불면증, 약기운이 떨어졌을 때 급격한 피로가 올 수도 있다고 한다(낮 시간에 집중을 하면서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기 때문..)
여름이 오고, 살 빼야하는데 잘 됐다고 생각했다.
다른 ADHD환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콘서타를 먹고나서 그동안 놓고 있던 정신줄을 꽈악 붙잡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하는데
나는 좀 시니컬한 타입이라서 그런지 그 정도의 드라마틱한 느낌이 오진 않는다.
하지만 평소의 실수가 5개라면 약을 먹고 한 3개 정도로 줄어드는 느낌 정도는 받았다.
평소에 마인드맵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아이디어에 흥미가 떨어져서,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경향도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위약효과일지도 모르겠다.
평소 한가지 주제를 던져주면 아이디어가 순간적으로 한꺼번에 떠오르는데, 콘서타를 먹으면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아이디어가 사라져버리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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